[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대기업 회장님들 묻는다, 스타트업 어떻게 배우냐고” 이람ㆍ임정욱 TBT 대표 - 중앙일보
위기라는 얘기를 거듭하다 보면 놓친다. 다른 세상은 이미 왔고, 누군가는 그곳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는 것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 중에, 스타트업 최전선에서는 다른 소식도 들려온다. “솔직히 스타트업 투자는 크게 위축된 건 없다”고, “대기업 회장님들이 스타트업 만나고 싶다며 자꾸 찾아온다”고 한다.
벤처캐피탈(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TBT의 이람ㆍ임정욱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신사동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들려준 얘기다. TBT는 중소벤처기업부 모태펀드 출자사업인 ‘포스트코로나 펀드’ 운용사로 지난 4월 선정됐다. 코로나19로 급변한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390억원 규모 펀드다.
두 대표는 지난 4개월 간 온·오프라인으로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만나며 발견한,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스타트업의 4가지 특징을 꼽았다.
① 일상 ‘비용’ 변화 직감
이람 대표(이하 이): 코로나19로 입고 만나고 만지는 일상적 행위의 비용이 높아졌다. 요금이 비싸져서가 아니라, 위험성 때문이다. ‘그걸 돈 내고 굳이?’ 하던 것들이 ‘돈 내고 할 만하다’로 바뀐 거다.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사운드짐(운동을 돕는 오디오 콘텐트), 오호라(셀프 젤 네일) 같은 스타트업에게 기회가 열렸다.
② 과감한 상품 전환
임정욱 대표 (이하 임): 오프라인 모임 신청 스타트업 이벤터스는 코로나19 직후 매출이 끊겼다. 그러자 열흘간 자체 개발해, 웨비나(온라인 세미나)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온라인 매출이 늘어 이미 흑자 전환했다.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도 국내 여행과 온라인 체험 상품을 발 빠르게 내놨고, 지난 7월 대형 투자를 유치했다.
③자기만의 플랫폼
이 : 모바일 앱 ‘그립’은 판매자가 자기 계정을 열어 실시간 쇼핑 방송을 하는 플랫폼이다. 판매자가 어디서나 방송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판을 깔았다. 이제는 대기업과 백화점이 그립 안에 들어와 그립 계정으로 장사한다.
④기술만으론 안 돼, 현장에 답 줘야
임 : 훌륭한 기술만으론 안 되고, 그걸 적용해 현장의 문제를 풀 명확한 제품이 있어야 한다. 하드웨어(모듈형 농장)와 소프트웨어(작물 데이터 및 노하우)를 갖춘 농업 스타트업 엔씽처럼 말이다. 이미 있던 기술을 쓰더라도,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창업가의 실력이다. (※엔씽은 농업과 IT를 결합해, 컨테이너 농장을 중동 국가에 수출한다. 인터뷰 직후 120억원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포스트코로나 펀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지향한다. 펀드에는 신한금융과 SK브로드밴드 등도 출자했다. 이 대표는 “대기업들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했다. “스타트업의 혁신 DNA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며, 최근엔 대기업 회장님과 일주일에 두 번씩 미팅이 잡히기도 한다”고.
- 회장님들은 뭘 물어보나.
- 이 : ‘플랫폼은 어떻게 만드냐, 스타트업이랑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많이 묻는다. 업계에서 잘하는 선수가 누군지도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하고.
- 왜 지금 그럴까?
- 이 :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배달의민족·쿠팡 효과가 크다. 두 회사가 나온 지 올해로 10년이다(2010년 창업). 지금 나오는 스타트업이 10년 후엔 우리를(대기업)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쿠팡 식으로, 적자 봐도 대형 투자하며 사업하는 회사가 없었다. '언제까지 저렇게 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 회사가 시장 승자가 되니 대기업이 겁을 낸다.
이·임 대표는 각각 네이버와 다음 임원 출신이다. 이 대표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네이버 블로그, 밴드 등을 개발한 스타 서비스 기획자다. 네이버 자회사 대표를 거쳐, 2018년 TBT를 창업했다.
- 투자할 때 TBT는 뭘 보나?
- 이 : 벤처 투자도 세대가 바뀌었다. 이거 나오기 전으론 못 돌아가는, 이용자의 생활 습관에서 ‘원 톱’인 플랫폼의 가치에 눈 뜨는 분위기다. 많은 사람이 쓰면 어떻게든 돈은 벌게 돼 있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벤처캐피탈의 도움이 필요하다.
- 임 : 10년 전만 해도 벤처 투자는 삼성 납품업체 같은 제조사 투자를 의미했다. 카카오톡에 대해 ‘그런 앱 쪼가리에 투자 안 한다’고 무시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이게 되겠냐며, 투자 안 하고 패스한 배민과 카카오는 외국 자본 대형 투자를 받았고 저렇게 컸다.
- 플랫폼이 커지면 수수료 문제, 독점 논란도 일어난다.
- 임 : 플랫폼 업체를 적대시하지 말고, 존재를 인정하며 활용했으면 좋겠다. 더 과도한 수수료가 있는 다른 시장은 얘기 안 하면서 플랫폼에 대해서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 이 : 공공 배달앱은 (들어가는)세금이 아깝다. 배민(배달)·자란다(아이 돌봄)·숨고(프리랜서 중개) 같은 플랫폼의 소비자와 공급자는 모두 정부가 평소 지원하려는 대상 아닌가. 정부가 보육 정책이나 프리랜서 보호 정책을 펴는 데 민간 플랫폼과 연계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면 좋겠다.
- 국내 스타트업계에 부족한 대형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뭘까.
- 임 : 최근 1~2년 간 싱가포르의 그랩에 SK·현대자동차·네이버 등 국내 대기업이 투자한 금액만 1조원이 넘는다. 이제 국내 스타트업도 과감한 투자가 있을 거로 본다. 다만 스타트업에 대기업이 투자하면 ‘문어발’이라고 비난하고, 투자받고 엑싯하는 창업자에게 ‘먹튀’라고 하는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더라.
- 이 : 한국은 여전히 사농공상의 유교 국가인 것 같다. 하지만 창업자의 스토리를 긍정적으로 봐줘야 창업보국이 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영웅으로 대하고 국내 창업자는 악당 취급하지 않았으면…. M&A는 국내 스타트업계에 없다시피 했는데, 대기업이 위기감을 느끼니 이제는 베팅하지 않을까 싶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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