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개장 전 나온 경제 지표는 모두 양호했습니다. 지난 4분기(10~12월) 경제 성장률 잠정치는 4.1%(연율)로 속보치 4.0%보다 상향 조정됐습니다. 지난 1월 미국의 내구재 수주는 전월 대비 3.4% 증가해 예상(1.0%)보다 증가폭이 컸습니다. 작년 12월(1.2% 증가)보다도 훨씬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오후 1시 시장을 뒤흔드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 재무부의 7년물 국채 입찰에서 수요가 급감하면서 발행금리가 치솟은 겁니다. 발행 직전 연 1.151%였던 금리는 입찰 결과 1.195%까지 치솟았습니다. 응찰률은 역대 최저인 2.045배를 기록해 바로 직전이던 1월말 입찰(2.305배)보다 대폭 낮아졌습니다. 외국인 투자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간접 수요가 1월 64.10%에서 이날 38.06%로 폭락한 탓이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경기 회복과 인플레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 행정부는 막대한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연말까지 채권 시장에 수조 달러의 미 국채가 추가로 쏟아질 것이란 뜻이다. 이 모든 요인들은 파월 의장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올해 Fed가 테이퍼링에 들어가거나 심지어 금리를 높일 수도 있다는 관측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부양책에 이어 3조 달러 수준의 인프라딜을 밀어붙일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통상 미국의 재정 적자는 연 1조 달러 수준입니다. 여기에 5조 달러의 부양책이 추가되면 6조 달러의 미 국채를 누군가는 소화해야하는 겁니다.
뉴욕멜론은행은 4월까지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2.0%까지 뛸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날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이르면 올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한 차례 올릴 것이란 베팅(5.8% 확률)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채권 시장의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반영하는 5년 BER(Break-Even Rate)는 2.4%까지 뛰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뛰어넘은 겁니다.
공포가 시장을 감쌌습니다. 채권 시장뿐 아니라 뉴욕 증시는 해머를 얻어맞은 듯 추락했습니다. 나스닥은 500포인트, 약 4%까지 떨어지면서 다시 1만3109포인트(전날 종가 1만3597)까지 밀렸습니다.
결국 다우는 1.75%, S&P 500 지수는 2.45% 급락했고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3.52% 추락했습니다. 나스닥은 지난해 10월 말 이후 가장 큰 하루 하락률을 나타냈습니다. 지수에서 보듯 모든 주식이 내린 가운데 기술주의 하락폭이 컸습니다. 업종별로 보면 기술주는 3.53% 급락했고 금리 상승 수혜주로 꼽히던 금융주도 1.81% 내렸습니다. 대형 기술주인 △애플 3.48% △아마존 3.24% △알파벳 3.26% 등이 모두 3% 이상 떨어졌고 △테슬라는 8.06% △ 엔비디아도 8.22% 급락했습니다. △니오 9.74% △퓨얼셀에너지 10.74% △플러그파워 13.6% 등 고평가 기술주들은 무너져내렸습니다.
10년물 금리는 1.5%대에서 마감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월가 관계자는 "저항선이 무너지면서 한번 깨진 레벨(연 1.6%)로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 1.5%는 매우 중요한 저항선이었습니다. S&P 500 지수의 배당수익률이 이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채권 수익률이 이를 웃돌면 주식에 투자해야할 이유가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립니다.
월가는 금리는 꾸준히 오르겠지만, 이렇게 급한 속도로 계속 오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릭 라이더 블랙록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CNBC 인터뷰에서 "인플레 기대가 치솟은 게 금리 상승의 한 원인이며 인플레 발생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금 경제는 과거처럼 과도한 인플레가 생길 구조적인 여건을 갖고 있지 않다. 인플레를 2~2% 중반 사이로 전망하며 이는 그렇게 높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금리가 오르고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반작용이 있다. 이런 움직임이 매우 빠르게 일어났지만, 실질 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기 때문에 그동안 극도로 완화적인 금융환경에 있었다. 약간의 불확실성이 있고 시장 변동성이 나타났고 다시 조정되겠지만 주식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5년물 국채와 물가연동채(TIPS)를 기반으로 한 인플레 기대치는 2.4%로 높지만 10년물의 경우 2.15%, 30년물은 2.1%로 더 낮다"면서 "이는 채권 투자자들이 인플레가 단기에 그칠 것이란 Fed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금리의 빠른 상승 속도를 감안하면 증시가 별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며 "S&P 500 지수는 여전히 사상 최고치에서 3%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Fed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실시했습니다. 당시에도 우려는 인플레 우려는 컸지만 물가는 지속적으로 안정세를 보여왔지요. 그런데 왜 지금 시장 일부에선 인플레 발생을 걱정하고 있을까요. 이는 근본적으로 이번 위기의 성격과 정부의 대응 방식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JP모간은 세 가지 점에서 금융위기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① 공급 VS 수요 주도 불황
금융 위기는 수요 주도형 불황이었다. 주택과 금융 시장의 과잉으로 경제가 과열되고 붕괴되자 수요가 사라졌다. 이에 따라 고용과 성장도 덩달아 무너졌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이번 침체는 수요는 여전히 강하지만 경제 봉쇄로 인해 공급이 감소한 게 특징적이다. 일단 백신 보급으로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 억눌렸던 수요가 터지면서 공급이 살아날 것이다.
② 상품 VS 서비스
금융위기가 터지자 소비자들은 집, 자동차 등 비싼 물건을 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서비스는 이용했다. 이번엔 반대다. 소비자들의 주택 구매는 지속됐으며 자동차 구매도 금세 살아났다. 소비를 온라인으로 옮기면서 상품 소비는 전년 대비 7% 늘어났다. 반면 서비스 지출은 경제 봉쇄로 인해 여전히 5% 감소한 상태다. 미국은 전체 소비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품보다 두 배 이상 크다. 특히 고용이 서비스에 달렸다. 경제가 살아나면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고용과 경제도 금융위기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③ 재정 및 통화 정책 지원
Fed는 두 차례 위기에서 모두 거의 즉시 기준금리를 제로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는 금융시장 경색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번엔 금융시장은 바로 정상화됐고 신용에 대한 접근은 쉽게 이뤄졌다. 이번 양적완화(QE4)는 Fed가 금융위기 당시 실시한 세 번의 양적완화를 모두 더한 것보다 규모가 큰 덕분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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