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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 대통령, “미국에 투자하라”
삼성전자 등 국내외 업체와 백악관 화상회의 열어
제조업 경쟁력 회복·일자리·중국 견제
삼중 포석 뚜렷
삼성전자, 미국 현지 투자 확대 만지작
정부, “한국 이익 극대화에 노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주요 반도체 기업인 등과 함께 한 화상 회의 자리에서 반도체 소재인 웨이퍼를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AP
“당신들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달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 등 주요 반도체 회사 대표를 면전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품귀 현상을 지렛대 삼아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 행보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침체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신사업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려 중국을 견제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지가 역력하다. 공교롭게 바이든 행정부가 부쩍 힘을 싣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은 우리나라의 주력 업종이다. 삼성·에스케이·엘지 등 여러 재벌그룹도 얽혀 있다. 코로나19가 촉매가 되어 누적된 미-중 갈등 심화란 틈바구니에 한국 정부와 기업들 앞엔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놓여있다.
■ ‘미국 재건’을 노래한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
발언은 1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화상으로 열린
‘반도체 미 공급망 회복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정상회의’에서 나왔다. 이날 회의는 백악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전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통신사 에이티앤티(AT&T), 완성차 제너럴모터스 등 미국 기업 외에도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 티에스엠시(TSMC, 대만)와 메모리 1위 삼성전자 등 국외 기업도 빠짐없이 소집됐다. 올해 초부터 심화한 반도체 품귀 현상과 이에 따른 완성차 회사의 생산 차질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잡힌 자리이나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를 뛰어넘는다.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 내 반도체 산업 강화와 미국의 공급망 보장을 말하기 위해서다.” “내 계획은 수백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토대로 한 미국의 재건, 우리의 공급망 보호, 미국의 제조업 재활성이다. 미국의 연구·개발을 다시 위대한 엔진이 되도록 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을 좇다 보면 ‘미국 경제의 재건’ 그 이상의 기획이 엿보인다. 그는 민주·공화 양당 소속 상·하원 의원 86명에게서 받은 서한 중 일부를 소개하는 형식을 빌어 “중국 공산당은 반도체 공급망을 지배하려고 공격적으로 계획하고 있다”며 “중국과 세계는 기다려주지 않고, 미국인들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 때부터 첨예한 경제와 군사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고 진행 중인 ‘미-중 갈등’이란 큰 틀 속에서 이날 회의의 의의를 찾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 다급한 미국 오늘날 미국이 처해 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등 친환경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는 배경이 드러난다. 우선 미국은 지난해 코로나19로 가장 깊은 상흔을 입은 국가 중 한 곳이다. 지난 한해 동안 사라진 일자리(순감 기준)만 970만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컸던 지난 2009년(550만개)에 비해 일자리 감소폭이 두 배에 이른다. 미국은 연평균 150만개 일자리가 창출돼 온 나라다. 단기적으로 빈 일자리를 메울 수 있는 대규모 투자가 바이든 정부로선 절실한 상황인 셈이다. 이런 점에 비춰 장치산업 특성상 수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와 그에 동반하는 다수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반도체 산업은 지난 1월 취임 뒤 코로나 이후 재건 수문장을 맡은 바이든 정부로선 놓치기 어려운 카드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 구실을 하면서 금융·법률·의료 등 서비스업에 견줘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도 바이든 정부가 힘 싣는 정책 과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미국 경제(GDP)의 제조업 비중은 2001년 13.9%에서 20년 가까이 추세적으로 낮아져 2018년 현재 10%를 간신히 웃돌고 있다. 제조업은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분야다. 특히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제조업의 기반 산업이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와 같은 신산업 발전에 필요한 부품이다. 바이든 정부가 최근 ‘경제재건계획’(Build Back Better Plan)의 1단계인 2조2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American Jobs Plan) 발표를 통해 반도체 산업과 공급망 지원 분야에 모두 1000억달러(우리돈 약 120조원)를 배정한 맥락이다. 김두언 케이비(K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정부의 부양책이 미 의회만 무사히 넘어간다면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1.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규모”라며 “특히 반도체와 연구개발 부문에 높은 투자 배분은 (경제의 효율성과 부가가치를 높여) 잠재성장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 주춤하는 중국 트럼프 정부 이후 이어지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등 제조업 강화 전략은 세계 패권을 놓고 벌이는 중국과의 경쟁과도 관련이 깊다. 트럼프 전 정부가 미국 기술을 활용한 부품과 장비를 중국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화웨이 등 중국 주력 기업을
블랙리스트(entity list)로 관리해온 연장선 위에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공세가 놓여있다는 뜻이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전 정부가 정한 블랙리스트 정책 유지는 물론 강화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9일(현지시각) 미 정부는 미국 기술을 활용해 중국 군사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중국의 슈퍼컴퓨터 관련 업체 7곳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중국은 미국의 파상 공세에 주춤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10여년 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서 202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수요의 40%를 국내 생산으로 충당할 예정이었으나 실제 실적은 이런 목표에 한참 밑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 판매된 칩 1430억달러 중 단지 227억달러어치(15.9%)만 중국 내에서 생산됐다. 그마저도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의 생산 비중은 5.8%(83억달러어치)에 그친다. 이미 금수 조처를 당한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미 애플 또는 삼성전자에 내줬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중국의 ‘반도체산업협회’(CSIA)가 미국의 반도체산업협회(SIA)에 지식재산권 등 포괄적인 문제를 놓고 워킹그룹을 만들자는 제안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통신은 “(미-중 반도체 워킹그룹의) 첫 회의 일시나 참여 기업들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추가 투자? 관심은 국내 양대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바이든 요청대로 미국 투자에 나설지 여부에 모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백악관 회의에서 구체적인 기업별 투자 요청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의견을 듣는 자리로 보인다”며 “공개된 회의 내용만으로는 물밑 투자 압박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국내 양대 반도체 제조회사는 국내 생산 비중이 크게 높지만 국외에도 생산설비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설립연도 1996년)과 중국 시안(2012년)과 쑤저우(1994년)에,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중국 우시(2005년)와 충징(2013년)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 중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추가 투자 여부가 관심을 끈다. 지난해부터 현지 언론을 통해 현 오스틴 공장 주변 부진 매입설이 종종 흘러나온 바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공장을 국외에 추가 투자할 계획은 있으니 어느 지역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미국의 경우엔 오스틴과 뉴욕주 등을 물색 중인데 (해당 주 정부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쪽은 “중국 공장의 장비 개선과 교체를 위한 추가 투자 계획은 있지만 국외에 공장을 새로 지을 계획은 현재로써는 없다”고만 말했다. 일부에선 미국의 공세가 자칫 국내 투자와 고용 축소로 이어질지 우려한다. 엘지에너지솔루션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쟁을 이어가는 와중에 미국 쪽 이해에 맞춰 엘지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미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투자에 직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할지 여부자. 투자 요청이란 당근에 이어 채찍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화웨이로의 부품 수출은 미 상무부의 승인을 얻어야만 가능한 상황이다.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소재융합산업정책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미-중 간 경쟁과 상관없이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양자 대결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식의 접근보다는 산업 발전을 꾀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1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주요 경제 부처 장관과 삼성전자·현대차 등 주요 기업 인사를 불러 대책 회의를 연다. 김경락 선담은 기자, 김영배 선임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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