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도 힘든데 자꾸만 불려간다···정부 숙제에 기업들 한숨 - 중앙일보 - 중앙일보
공공사업 들어오려면 '입장료' 내라?
하지만 이와 관련해 대기업 계열 SI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익명을 원한 SI 업체 관계자는 10일 “정부가 현재 제한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허가를 미끼로 대기업에 사실상 출자를 강요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제도의 좋은 취지 못지않게 대기업 입장에서는 일종의 입장료를 내야 공공사업에 참여가 가능해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생길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시행령 지키다가 새 사업 못 할 판"
다음 달 발효를 앞둔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시행령(안)이 대표적이다. 시행안은 개인정보의 추가적인 이용ㆍ제공 기준(영 안 제14조의 2)과 가명 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영 안 제29조의 5) 등을 모(母)법인 개인정보보호법 규정보다 더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을 지키다 보면 사실상 새로운 사업이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가명 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와 관련해 법률 개정안에서는 가명 정보에 대한 파기 의무를 제외하는 등 업계 입장을 고려해주던 것을 그 시행령에서는 다시 파기 의무를 추가해, 모(母)법보다 시행령의 규제가 더 강한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안 그래도 죽을 맛인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추가 규제가 두렵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현재 대형마트에 적용 중인 의무휴업제를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면세점 등으로 확대 적용하는 걸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일감을 나누는 문제 등은 결국 택배기사들의 수입을 나누라는 의미여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10년 차 택배기사인 서민호 씨는 “코로나19로 배달량이 늘어 최근엔 하루 평균 300~350개를 배송하고, 컨디션에 맞춰 식사와 휴식을 하고 있다”며 “물량 조정은 기사들이 각자의 몫을 줄여서 다른 사람 물량을 맞춰주자는 얘기인데, 실질적으로 수입과 관련된 부분이라 쉽지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여기에 택배업체 본사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택배기사들이 근로 조건을 두고 본사에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이를 방관하는 형편이다.
'양극화 문제 해결' 요구 부담
기업 입장에서 청와대나 정부 주도의 간담회나 조찬 모임은 숙제를 받는 자리인데, 최근 들어 이런 자리가 지나치게 잦아졌다는 게 재계의 불만이다. 한 예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8일 국내 대형 통신ㆍ포털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만찬을 했다. 김 실장은 “최근에 정부가 준비하는 디지털 뉴딜과 관련해서도 설명할 부분도 있고 요청할 부분도 있고 여러 의견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청년 고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지난달에도 김용기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 부위원장과 함께 삼성ㆍ현대자동차ㆍSKㆍLGㆍ롯데 등 5대 그룹의 고위임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용기 부위원장은 삼성그룹의 ‘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 같은 청년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원한 10대 대기업 관계자는 “수도권-지방, 대기업-협력사, 정규직-비정규직 간 양극화 해결이 요즘 국정의 가장 강조점인데, 기업들이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강요를 받는 상황”이라며 “기업도 정해진 예산의 범위에서 움직이는 만큼 모든 문제의 해결사가 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워주는 역할에 주력해야 할 정부가 '기업들이 이런 걸 해줬으면 좋겠다'는 '가이드라인'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기ㆍ이소아ㆍ강기헌 기자 lee@joongang.co.kr
2020-07-11 22:00:02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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