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대 290만명 신용사면···‘선심’에 가려진 것들 - 시사저널e
도덕적 해이 및 신용질서 왜곡 우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정부가 올해 5월 말까지 대출 연체자 최대 290만명의 연체 이력을 삭제해주는 ‘신용사면’을 단행한다. 이번 신용사면을 통해 정부는 2021년 9월부터 이달 말일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 연체를 오는 5월 말까지 모두 상환하면 연체 이력 정보를 금융기관 간에 공유하지 않고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에도 미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전체 연체발생자의 98%에 달하는 290만명의 연체 이력이 삭제되며 이 중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상승할 전망이다.
서민과 소상공인의 신용회복 지원을 도와 취약차주의 재기를 돕는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행된 정책이지만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2021년 8월 이후 약 29개월 만이라는 짧은 주기로 재시행된 탓에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선심성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이 가진 '선심'이 시장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가려버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신용사면 추진을 두고 금융당국은 전액 상환한 차주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채무 변제를 독려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성실 상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코로나19 여파와 고금리 장기화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많은 차주들이 연체를 피하기 위해 꾸준히 대출을 갚아왔지만 신용사면이 단행되면서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신용사면 재시행으로 금융소비자들 사이에는 ‘빚을 갚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될 우려가 크다. 향후에도 경기가 어렵고 금리가 높은 상황이 돌아오면 신용사면을 또 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성되는 까닭이다.
이런 잘못된 기대감은 금융시장의 신용질서 왜곡으로 이어진다. 이번 신용사면으로 연체 기록이 삭제되는 연체자 290만명 중 250만명의 신용점수(신용평가사 NICE 기준)가 평균 39점 상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5만명은 카드 발급 기준 최저신용 점수(645점)을 충족할 것으로 예상되며 25만명가량은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863점)를 넘게 된다. 신용사면으로 표면적인 신용점수가 상승해 신규 대출을 받고 카드를 발급받을 수는 있겠으나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대출 상환이 어려운 저신용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상 상환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채무 변제를 독려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기대에 물음표가 남는 이유다.
신용사면을 통해 조정된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늘어난 대출은 다시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금융사의 건전성 악화를 야기한다. 건전성 부담이 커진 금융사들은 금리 인상 등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게 되고 이는 결국 전체 금융소비자들의 대출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고물가·고금리라는 이중고 속에 고통받는 소상공인과 서민을 외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금융지원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선심’에 기댄 신용사면은 득보다 실이 많은 근시안적 정책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게으른 고민에 기댄 손쉬운 선택지보다는 자영업자와 취약차주의 어깨를 짓누르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기 회복에 집중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때다.
2024-01-19 08:05:29Z
https://news.google.com/rss/articles/CBMiP2h0dHA6Ly93d3cuc2lzYWpvdXJuYWwtZS5jb20vbmV3cy9hcnRpY2xlVmlldy5odG1sP2lkeG5vPTMwNzI0MtIBQmh0dHA6Ly93d3cuc2lzYWpvdXJuYWwtZS5jb20vbmV3cy9hcnRpY2xlVmlld0FtcC5odG1sP2lkeG5vPTMwNzI0Mg?oc=5
CBMiP2h0dHA6Ly93d3cuc2lzYWpvdXJuYWwtZS5jb20vbmV3cy9hcnRpY2xlVmlldy5odG1sP2lkeG5vPTMwNzI0MtIBQmh0dHA6Ly93d3cuc2lzYWpvdXJuYWwtZS5jb20vbmV3cy9hcnRpY2xlVmlld0FtcC5odG1sP2lkeG5vPTMwNzI0Mg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기자수첩] 최대 290만명 신용사면···‘선심’에 가려진 것들 - 시사저널e"
Posting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