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은 '100% 배상'…옵티머스 투자자는 왜 어렵나 - 머니투데이
옵티머스 피해 보전, 100% 가능할까?
15일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 앞에서 옵티머스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투자원금 회수를 호소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최근 NH투자증권이 투자원금의 40%에서 최고 70%에 이르는 유동성 지원안을 내놨지만 투자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즉시 100%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당국이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판매한 은행·증권사들로 하여금 투자자들에게 100% 피해를 배상토록 압박해 이를 관철시킨 것도 옵티머스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원칙상 펀드 투자금의 환매 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는 운용사이지 판매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펀드 계약과정에서 자금은 투자자→판매사→운용사(옵티머스)로 흘러들어간다. 판매사는 판매과정에서의 위법행위에 책임을 질 뿐 운용행위에 대한 책임은 운용사가 지는 게 보통이다.
이번 옵티머스 사태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판매사가 투자자들에게 돈을 물어주게 되더라도 '100% 배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판매사들이 운용사와 사실상 공모(共謀, 공동모의)해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라임 때는 일부 판매사가 라임 측 부실을 알고 난 후에도 계속 펀드를 팔았다는 이유로 사기행각의 '사실상 공범'이라는 점이 인정돼 투자자들이 '100% 배상'을 받는 것이 가능했다.
이보다 앞서 판매사의 100% 상환 책임이 부과된 사례였던 '피닉스 항공기 펀드' 사건 때도 판매사가 사실과 다른 정황을 알면서도 이를 투자자들에게 잘못 알려줌으로써 투자자들에게 펀드를 팔았다는 점이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었다.
라임 및 항공기 펀드 사건의 공통점은 바로 "판매사들이 운용사 측의 부실을 알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 주범들의 적극적인 사기행각에 속았을 뿐 의도적으로 투자자들에게 부실펀드를 떠넘긴 게 아니라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 미래통합당 사모펀드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 등은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주범들은 공공기관 등과의 자산양수도계약서를 위조해 NH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을 속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정황은 NH투자증권 상품심의위원회에 김 대표가 참석해 상품 내역을 소개한 녹취록에 잘 담겨 있다. 위원회가 이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위원회는 하나은행·예탁결제원에 대해서도 "선량한 관리자로서 의무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고 질타했다. 수탁기관인 하나은행은 펀드 계좌에 비상장사 사모사채만 채워져 있는 상황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사무관리사였던 예탁결제원은 비상장사 사모사채로만 채워진 펀드에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채워져 있는 것처럼 펀드명세서를 작성해줬다. 이 펀드명세서는 NH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을 속이는 데 활용됐다. 그만큼 옵티머스 주범들의 준비가 치밀했다는 것이다.
한편 투자자들의 비판은 NH투자증권으로만 쏠려 있다. 자신들은 NH투자증권 간판을 보고 투자한 만큼 NH투자증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NH투자증권은 판매사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유동성 지원안을 내놨지만 이를 넘어서는 법적 책임까지 질 의향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어 양측 이견의 골이 깊다. 투자자와 NH투자증권 사이의 이견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내달 1일 개시될 김 대표 등 옵티머스 주범들의 재판에서 이들이 빼돌린 자금의 사용처 등은 물론이고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예탁결제원 등 펀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주체들의 책임 등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누가 얼마의 책임을 져야할지 결정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황국상 기자, 김도윤 기자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각종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100% 배상)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6.30/뉴스1 |
‘사모를 사모답게’. 금융위원회가 2015년 사모펀드 제도 완화에 대한 정책 실패를 반성하며 올 4월 관련 규제를 재차 강화하면서 내건 기치다.
이 간단한 말에 사모펀드 시장 해법이 담겨 있다. 기존 사모펀드가 그만큼 기형적이었다는 자성인 셈이다. 사모가 사모다울 때 신뢰를 잃은 사모펀드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30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사모펀드 시장은 본래 선수들끼리 알아서 투자상품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해 투자하라고 열어줬기 때문에 수익만큼 위험도 높다”며 “사모펀드 시장을 공모와 구분되는 별도 시장으로 육성하려면 아마추어를 빼고 감독도 빼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전문 투자자들만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윤승영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한국형 헤지펀드는 사실상 ‘준(準) 공모펀드’이지 사모펀드라고 할 수 없다”며 “은행과 증권사의 고객 창구를 통해 1억원만 있으면 사실상 아무나 투자할 수 있는 펀드가 사모펀드라는 것은 사모펀드 정의(定義)와도 아예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팝펀딩, 젠투 등은 일련의 환매중단 사고로 시장을 뒤흔든 ‘사모펀드’다. 운용사·펀드별로 사고가 터진 세부적 원인은 차이가 있다.
라임은 펀드 환매에 제약을 초래하는 만기 미스매치 구조가 핵심 문제로 지적됐고 옵티머스의 경우에는 투자제안서와 다른 자산을 편입해도 감시를 피해갈 수 있었던 제도 허점 등이 원인이었다. 디스커버리 등 해외펀드는 허술한 해외실사, 정보 비대칭이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이들 사고들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공통 분모가 있다. “사모가 사모답지 못했다”는 점이다.
2015년 10월 금융당국이 내놓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을 계기로 너도 나도 손쉽게 운용사를 만들어 각양각색의 펀드를 출시했다. 당시 적격투자자 범위도 확대됐다.
투자식견이 부족한 비(非)적격 투자자들이 제도 변경 덕분에 ‘적격투자자’로 떠받들어지며 사모펀드 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사모펀드 활성화’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론 ‘사모의 공모화’에 불과했다.
옵티머스 주범들처럼 선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양떼 속 늑대처럼 활개치며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환경이 이 때 조성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에 터진 사고는 법규 개정과 사모펀드 전수 조사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유사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하려면 ‘시장과 투자자의 미스매칭’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는 선수끼리, 사모는 사모답게 운용해야 잇따르는 사고를 원천 방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는 본래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다.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사인(私人)간 계약’ 형태를 띤다. 펀드별 투자자 수도 49인 이하여야 한다. 사모펀드 운용의 자유는 투자자-운용사 간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속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펀드들이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각종 ‘시리즈 펀드’로 만들어져 수천명에게 수천억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대규모 손실을 야기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는 투자자가 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위험 투자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개인의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도 현행 1억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올려 진입 문턱을 높인다. 2019.11.14/뉴스1 |
시장을 분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즉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를 모두 없앤 전문가들만의 완벽한 사모펀드 시장 △공모와 사모의 중간 정도로 운영되면서 이에 상응하는 규제가 적용되는 시장으로 이분화하는 법이다.
윤 교수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민간 기관들이 LP(출자자)인 PE(프라이빗에쿼티,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에서는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과 같은 사건들이 단 한 건도 없었다”며 “투자자도 운용사도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 고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창출에 나서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8년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법안도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사모펀드를 기관전용과 일반투자자용으로 나눠 규제하는 내용의 안을 제시한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이 법은 조만간 21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예정이다.
사전규제 외에도 사후적 징벌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피해금액만 650억달러(한화 약 77조원)에 달해 사상 초유의 사모펀드 사기로 일컬어지는 ‘메이도프 폰지사기’의 주인공,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에 대해 미국 법원은 징역 150년, 벌금 1700억달러를 부과하고 부인과 가족 명의의 재산도 몰수했다.
반면 한국은 ‘사기도 잘 하면 벤처’라는 말이 돌 정도로 금융사범에 대한 징벌 수위가 약하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국은 사후 규제가 너무 약해 상대적으로 사전 규제가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러나 사전 규제를 무시하고 수백억 사기를 쳐도 벌금으로 몇 천만원만 내도 된다면 펀드 사기는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국상 기자, 김소연 기자
2020-08-30 21:3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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